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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발전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은 <로마 제국 흥망사>라는 대작을 남겼습니다. 이 책에서 기본은 로마 제국 멸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우리는 로마 제국이 왜 멸망했는가를 찾아보느니 차라리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존속했는가 하는 사실에 놀라야 할 것이다." 이 역사가는 왜 로마 제국의 멸망보다는 존속에 놀라워했을까요?

 

로마의 발전

  • 로마의 공화정과 제정

로마의 공화정과 제정의 시작은 로마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 인들은 본디 이탈리아 반도 중서부의 테베레 강 유역 작은 마을에 거주하던 강인한 농부들이었습니다. 에트루리아 왕의 지배를 받던 로마 인들은 기원전 6세기말 왕을 폐위시키고 귀족 중심의 공화정을 시작하였으나, 공화정 수립 후 귀족과 평민의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진 평민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평민들이 이민족과 전쟁을 치러야 했던 상황에서 귀족들은 평민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민회와 호민관 제도가 생기고 12 표법, 리키니우스 법, 호르텐시우스 법 등의 법령을 통해 평민들의 국정 참여가 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평민들은 법적인 평등을 쟁취하였을지는 몰라도, 경제적 유력자들이 공직을 독점하여 사회 경제적인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인접 민족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로마 인들은 전투 기술을 발전시켜 기원전 270년경에는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하였습니다. 기원전 264년부터 146년까지 이들은 카르타고와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였습니다.

포에니 전쟁은 로마 사회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버려졌던 농토를 부유한 자들이 독점하여 대농장(라티푼디움)으로 만들었습니다. 몰락한 농민은 빈민이 되었고 로마는 사회적 불안을 맞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말 호민관이 된 그라쿠스 형제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하는 개혁을 단행하려 하였으나 대토지 소유자들의 반대로 실패에 그치고, 이후 로마는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로마의 귀족층 내부에서는 권력과 부를 둘러싼 암투와 내란이 벌어졌고, 사병을 거느린 군 지휘관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를 수습하고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는 여러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그가 왕이 되어 전제주의를 시행하려 한다는 소문이 떠돌자 그것을 막으려는 귀족들의 음모로 암살당하였습니다.

그 뒤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31년 악티온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무찌른 후 로마 제국 황제가 되어 제정 로마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로마 제국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까지 약 200년에 걸쳐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군사적으로도 팽창을 거듭하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 로마는 어떤 방식으로 영토를 팽창시켜 나갔을까?

로마는 어떤 방식으로 영토를 확장했을까?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인접 지역부터 점령하였을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먼 지역이 먼저 점령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로마 인들은 이탈리아 반도와 접하고 있는 갈리아 지역보다 에스파냐 지역을 먼저 점령하였는데, 에스파냐 지역은 이탈리아 반도의 본국과 해로를 통해서만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모국과 속주 사이에는 연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해상을 통한 연락망은 예측할 수 없는 기상 변화와 자주 출몰하는 해적 때문에 신뢰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안전한 육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결국 갈리아 지역을 점령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 로마의 몰락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군인 출신 황제가 등장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속주에서는 반란이 빈발하고, 변방의 이민족이 침범하여 도시와 상공업이 피폐하고 중산층 시민이 몰락하였습니다. 3세기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오리엔트식의 전제 군주제를 채택하여 제국의 중흥을 꾀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되어 서로마 제국은 476년 게르만 족에 의해 멸망하고, 동로마 제국은 그 뒤 1,000여 년을 더 존속하였습니다.

 

로마의 문화

로마의 문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문화를 규범으로 삼았으나 그것을 자신들의 경험과 정신세계에 적합하도록 변형시켰습니다. 그리스 문화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로마의 역사적 경험에 맞도록 변형된 이 문화의 전통을 그레코로만(Greco-Roman)이라 하였습니다.

우주와 신과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를 풀어내려고 하였던 그리스 사람들과 달리 로마 사람들은 법률, 도시 설계, 건축, 토목 등과 같은 실제적인 문제에서 큰 진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데 그런 지식들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오리엔트 문화, 그리스 문화, 헬레니즘 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통합하여 유럽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전해 주었습니다.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지시로 만들어진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후에 유럽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법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 제국의 도로나 공공 서비스도 유럽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에는 10만 km에 이르는 고속도로가 있었고, 이탈리아 내에만 400여 개의 간선 도로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이 도로들은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져 아직도 사용되는 곳이 있을 정도이며, 당시 로마의 공공 서비스는 18세기 서구 사회보다 더 수준이 높았다고 합니다.